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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스포일러?)

잡동사니 2007. 4. 14.
  스파르타를 소재로 한 영화가 미국에서 히트를 쳤으나 내용에 문제가 많아서 이란인들(페르시아의 후손)이 싫어한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300'이라는 영화가 상영 중이라는데 이 영화가 그 영화인 줄은 몇일 전에서야 알았다. 왜 제목이 '300'일까 했더니 허무하게도 300명이 싸우는 이야기라더라. 영화 내용도 제목 만큼이나 단순(?)하다.

  영화가 단순하다는 것은 머리를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내용(또는 대사)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남는 것은? 바로 영상(이미지)이다.
  초반부는 나레이션을 통해 사족은 자르고 각 씬의 이미지를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분량은 길지 않지만 스파르타의 이미지는 계속 남는다.
  페르시아군의 위협에 대항하러 북쪽으로 간 300명의 정예부대는 시체로 나무를 만든 페르시아군의 잔인함에 치를 떨지만 그들 자신도 페르시아군의 시체로 벽을 쌓는다. 스파르타군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잘 버텨내자,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황제는 정예부대인 임모탈을 투입한다(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싶었는데 무슨 디아블로 아이템 이름 같기도 하다). 스타르타와 임모탈의 치열한 전투 중에 벗겨지는 임모탈의 가면. 임모탈의 쌩얼을 보는 순간 나는 똘이장군이 떠올랐다(북한군은 정말 괴물인 줄 알았던 그 순진함이여). 저급한 오리엔탈리즘의 시작이 아니길 바랬지만 그 뒤를 이은 거구의 사나이, 코뿔소·코끼리 등의 동물을 이용한 공격에 이어서 마법사까지 서양의 우월자들은 동양의 모든 공격을 막아낸다. 스파르타의 취약점인 곱추 사나이를 회유할 때 저급한 오리엔탈리즘은 극에 달한다. 어쨋든 페르시아군이 포위된 된 300명의 전사들은 마지막 반격으로 크세르크세스 황제를 노리지만 실패한다. 그것도 참 유치한 방법으로.
  한편, 스파르타의 여왕은 왕과 300명의 전사들을 지원하기 위한 추가 파병을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핵심의원에게 몸로비를 하지만 배신당해 의회에서 연설도 소용이 없는 듯 했다(사실 연설 내용도 너무 유치뽕짝이었다). 다행히 반역자가 어이없게 드러나 결국은 여왕의 의도가 달성되는 듯(그래도 칼로 쑤실 때 조금은 후련했다).
  엔딩은 할리우드식의 전형적인 억지감동으로 끝난다.

  역사적 사실와 영화상 내용이 달라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이 영화는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 스타일리쉬한 전투장면이 박진감 넘치는 것은 사실이고, 스파르타 전투전술의 묘사도 상당히 흥미를 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즐기려면 뇌는 빼놓고 눈으로만 볼 것.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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